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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칼럼

[베이비 뉴스] 잠들기 어려운 곳, 좋은 출산장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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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수유한의원 조회97회 작성일 19-07-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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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어려운 곳, 좋은 출산장소 맞나요?

문화와 한방으로 보는 임신·출산과 육아 


베이비뉴스, 기사작성일 : 2013-01-24 10:00:14

[연재] 한경훈 원장의 산수유(産·授乳) 이야기

 

여러분은 어디에서 출산하셨나요? 어디에서 출산하실 계획인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 대학병원이나 여성병원, 또는 산부인과 의원 중 하나를 떠올릴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임신부는 병의원에서 출산을 하고 있으니까요. 점차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1000명에 두세 명만이 병의원이 아닌 조산원 또는 가정에서 출산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전통적인 출산장소는 어땠을까요? 산모가 살고 있는 집, 산모가 결혼 전 지내던 친정집, 살고 있는 집 밖이지만 마을 안에 있는 별도의 공간, 살고 있는 집뿐 아니라 마을까지 떠난 별도의 공간 등 크게 넷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살던 집과 친정은 지금 생각해도 쉽게 이해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다소 생소할 것입니다. 이는 출산 중에 생기는 출혈로 인해 자리가 더럽혀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 에스키모 여인들은 격리된 텐트나 이글루에서 아기를 낳았고,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적으로 출산용으로 만든 별도의 움막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요즘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아프리카 말리의 밤바라족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곡물 탈곡소에서 출산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의 손길에 따라 좁쌀이 열리는 것을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과 상징적으로 연결시킨 의미가 있답니다.

 

우리 민속에도 마을을 떠난 출산이 제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마을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동제(洞祭) 기간에 만삭의 임신부는 마을 밖에 따로 마련된 해막(解幕)’이라는 오두막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서 해막동이를 낳게 되더라도 동제기간이 끝나고, 일정한 정화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비인간적인 처사로 보이지요. 살던 집에서 떠나 인적 없는 산속에 해막할매나 혹 동행한 또래 임신부와 밤을 보내며 산짐승이나 도깨비를 두려워했을 걸 생각하면 전통이라고 다 좋다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출산이 한 가정의 일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일이기도 했고, 임신부도 그러한 의미를 알기에 기꺼이 해막으로 향했다고 하니 출산이 마을공동체와 무관해진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비, 세자빈, 후궁의 산달이 다가오면 산실청 또는 호산청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고 출산준비를 했습니다. 출산은 주로 산모가 평소 거하던 방을 산실로 꾸며 그곳에서 이뤄졌습니다. 후궁의 경우에는 본래 궁 밖의 친정에 산실을 꾸몄지만 임진왜란 후에는 마찬가지로 평소 궁내에서 거하던 방을 이용했습니다.

 

다양한 출산 장소 이야기에 뭔가 생각이 더 복잡해지나요? 단순히 무엇이 좋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건강한 출산문화를 연구하고 많은 아기들을 자연출산으로 받아 온 프랑스의 산과의사 미셸 오당의 이야기는 참고할 만 합니다. 그는 바람직한 출산의 조건은 잠들기 좋은 조건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출산은 자궁에서만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게되는데, 이 호르몬은 우리가 잠에 들었을 때처럼 의식과 감각 작용이 옅어질 때 활발하게 분비되고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출산 장소 역시 잠들기 좋은 장소의 조건과 비슷하겠지요. 우리는 주위에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친다는 분을 흔히 보곤 합니다. 더구나 그곳이 너무 밝거나 시끄러운 곳이라면 더욱 잠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곳에 낯선 사람이, 그것도 여럿이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끝없이 말을 걸고, 거기에 대꾸를 해야 한다면?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아기들은 이런 조건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잠들기 어려운 곳, 즉 자연스러운 출산에 불리한 장소에서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통사회에서 출산이 이뤄지던 곳의 대부분은 적어도 잠들기에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칼럼니스트 한경훈은 한의사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첫째를 조산원에서 맞이하면서 출산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둘째는 살던 집에서 감격스런 가정분만을 경험했다. 현재는 출산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한양대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해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산수유는 친근한 한약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출산, 행복한 모유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같은 이름의 칼럼을 시작했다.

현재 안산 산수유한의원 원장, 국제인증수유전문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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